폴란드 작가 곰브로비치의 소설 번역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밀란 쿤데라로부터 "카프카보다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던 폴란드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1904-1969)의 장편소설 「페르디두르케」와 「포르노그라피아」가 민음사가 펴내는 '세계문학전집'의 제101-102권으로 출간됐다. 「페르디두르케」는 미국작가 싱클레어 루이스의 소설 「배빗」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제목을 따온 작품으로 곰브로비치가 1937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성숙한 세계, 질서잡힌 체계의 허구성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적 작품으로 꼽힌다. 서른 살의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인칭 소설로,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시절로 되돌아가 다시 성장기를 겪는다는 환상적 줄거리로 진행된다. 작가는 어른의 사고력을 갖췄으면서도 어린아이로 취급받는 주인공을 통해 미성숙한 존재들을 끊임없이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기성세계의 폭력성을 들춰낸다. 작가 자신이 소설에 개입해 역사와 문학, 정치와 예술전반에 대해 논평하는가 하면, 희곡이나 각종 편지,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인용하는 등 기존의 소설형식을 파괴하는 실험이 시도된다. 곰브로비치의 문학성을 높이 평가한 밀란 쿤데라는 "이 작품은 사르트르의 「구토」보다 1년 먼저 발표됐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실존철학과 소설을 결합시킨 모델이 잘못 제시됐다"며 "이는 철학과 소설의 신혼 초야가 서로 따분해 하는 가운데 지나가버리고 만, 대단히 유감스러운 결말"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곰브로비치의 세번째 장편소설인 「포르노그라피아」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돼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부산영화제에 초청됐던 작품이다. 이 소설 역시 「페르디두르케」와 비슷한 주제인 미성숙과 성숙, 완성과 미완성의 문제를 놓고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고 있다. 2차 대전 시기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폴란드 시골마을 배경으로 한 여자와 두 남자사이에 벌어지는 사랑의 갈등, 여기서 비롯된 살인, 보복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곰브로비치는 슐츠, 비트케비치와 더불어 '모더니즘 문학 삼총사'로 불리는 폴란드 현대문학의 거장이다. 그는 1933년 펴낸 첫 작품집 「미성숙한 시절의 회고록」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첫 장편소설 「페르디두르케」등이 나치 치하에서 금서로 묶이고, 폴란드가 공산화되면서 1960년대 중반까지 판금되는 등 작가적 불운을 겪었다. 2차 대전이 터지기 직전 아르헨티나로 건너갔던 그는 1963년 베를린으로 이주했으며, 네번째 소설 「코스모스」를 발표한 뒤 1968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윤진.임미경 옮김. 각권 316-464쪽. 각권 8천-1만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