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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 남진우
작성일자 2018-12-24
조회수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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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남진우

 

날은 빠르게 저물었다. 그는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몸을 이끌고 붐비는 지하철에서 내려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오르막길이어서 그는 조금 헐떡거렸다. 옆구리에 끼고 가던 서류 봉투가 떨어져 몸을 굽히고 주워 드는 순간 그는 저 앞에서 무슨 짐승 같은 게 어른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개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짐승이 골목 어귀에 가만히 서 있었다. 개일까, 아니면 늑대일까. 서류 봉투를 든 채 그는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키려 했지만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린 그의 두뇌는 잘 돌아가주질 않았다. 며칠 전 동물원에서 야생동물 몇 마리가 탈출했다는 풍문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개라면 그냥 지나치면 되지만 늑대라면…… 늑대라면…… 그는 서류 봉투를 다시 옆구리에 낀 채 그 어둑한 형체를 노려보았다. 날은 빠르게 저물었고 사위는 짙어오는 어둠에 잠겨들고 있었다. 개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그 짐승은 가만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한 걸음 내디뎌도, 다시 한 걸음 내디뎌도, 마치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발을 질질 끌듯이 해서 그가 마침내 개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그 짐승이 있던 자리에 도착한 것은 날이 완전히 저물어서였다. 오직 캄캄한 어둠이 도사리고 있을 뿐 거기엔 개도 늑대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던 그는 고개를 젖히고 어두운 허공을 향해 개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울음을 길게 내질렀다.

    

해질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간.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오는 의 앞에 개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짐승이 어른거리고 있다. 개일까? 늑대일까? ‘는 잠시 긴장한다. 프랑스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함을 의미한다. 저녁 땅거미가 내릴 무렵 멀리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친숙한 개인지, 아니면 나를 해칠 늑대인지 분간하기 힘든 시간. 빛과 어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시간. 그것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이 시에서 개와 늑대 사이의 그 모호한 순간 앞에 서 있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려 지친 가 마침내 그 짐승이 있던 자리에 도착했을 때 개도 늑대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경계가 모호한 그 시간 속에 서 있던 의 정체성마저 모호해지는 순간. 그는 고개를 젖히고 어두운 허공을 향해 개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울음을 길게 내지르고 있다. 현대인의 일상은 규칙적인 일과에도 불과하고 모호한 삶의 반복일 뿐이다. ‘개인지 늑대인지알지 못하는 어스름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에 살아가는 인간 또한 모호한 존재라는 것. ‘개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울음을 내지르고 있는 것은 모호해지는 자아의 정체성을 향한 절규이다. (권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