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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과 나 사이에 - 장경린
작성일자 2019-01-01
조회수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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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사이에


장경린

 

당신의 1은 나의 1보다 크다

나무의 1은 바위의 1보다 크다

귀뚜라미의 1은 나무의 2보다 크다

서울의 1은 경상도나 전라도의 2보다 크다

아니 작다

   

11사이에

당신과 내가 있고

당신과 나 사이에

0이 있다

우리는 교미 중이다

우리는 출산 중이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생명을 꺼내

어둠 속으로 돌려보내는 중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달걀이 한 알 있고

달걀 속에는 깨진 토마토가 가득하고

깨진 토마토 속에는 합의서와

11보다 작다는 합의서와 압력밥솥이 있고

   

당신과 나 사이에

토막 난 시체들이 즐비하고

그 토막 끝에서 새벽이 돋고

사랑을 속삭이고 사랑을 토막 내고

토막을 또 토막 토막 내고

   

당신과 나 사이에

0이 있다

는 사실 때문에 나는 1을 사랑하고

당신도 1을 사랑하고

내가 당신 속에서 나를 찾는 동안

당신은 내 속에서 토종닭을 잡아먹고

   

당신과 나 사이에

또 다른 0이 있다

는 사실 때문에 배추밭에 나비가 날아오고

한강이 흐르고

   

0은 시작이자 끝이며, 끝인 동시에 시작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아무 것도 포함하지 않는 것, 없으면서 있고 있으면서 없는 것이다. 때문에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0은 어둠이면서 생명이고, 생명이면서 곧 어둠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토막 난 시체들이 즐비하고, 사랑은 끊임없이 토막나고 있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끝없이 토막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그러나 0이 있다. 끝인 동시에 시작인 0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이해하기 위한, 1을 사랑하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또 다른 0”이 있다. 또 다른 0이 있음으로 나는 또 다른 1을 사랑하고 당신은 또 다른 1을 사랑하고, 결국 당신과 나 사이에 사랑은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0과 같은 것이다. 당신과 나는 꼭 지금처럼 그만큼의 거리, 그만큼의 미래가 있을 뿐. (권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