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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르는 귀 - 정진규
작성일자 2019-05-30
조회수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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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귀


정진규


인왕산으로 가는 북촌 골목 한 흰 벽에 모르는 귀,* 귀가 하나 잔뜩 걸리셨어요 귀만 남으셨어요 바쳐진 소모의 얼굴들 귀로만 남으셨어요 <우주 한 분이 하얗게 걸리셨어요>** 진종일 걸리셨어요 젖꼭지도 없이 당신의 젖꼭지를 진종일 빨았으나 무엇 한 모금 넘긴 바 없어요 넘겨주신 것 하나 없이 머언 모래밭 모래알들만 그들의 그늘만 낙타도 한 마리 없이 버석거리게 하셨어요 <모르는 귀> 당신이 듣고 있는 말씀 한 마디도 듣지 못했어요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 중이신지 잔뜩 하얗게 걸려 있긴 마찬가지셨어요 <모르는 귀>로 잔뜩 밤샌 날 새벽 그간의 내 시편 몇 행() 겨우 읽어 오음(五音)을 떨게 해 놓고 내 귀청이 트이는 걸 건드려 놓고 나 오늘은 열심히 네게 가지 않았어요 <모르는 귀>, 너만 우거지기 때문이었어요 나만 지워지기 때문이었어요 오, 무서워요 <모르는 귀>, 잔뜩 지워진 내가 들려요

 

* 모르는 귀 : 정서영의 조각. 2016.8.26 선재 미술관 오픈

** 우주 한 분이 하얗게 걸리셨어요: (정진규 시집, 2015.3.30 중앙북스)

 

  총체적인 감각으로 이 시는 "네"가 "나"를 지워내는 오음(五音)이기를 바란다. 감각은 하나이면서 이중적이고 나아가 먼 너머의 바깥과 손닿는 세상의 안쪽이 겹쳐져서 아득하면서 일체감이 전해진다. 인지하는 세계관에 있어서도 열림과 닫힘이 하나이고, ()의 세계와 동()의 세계가 다르지 않고,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상처는 아이러니하게도 황홀을 동반한다.


  시의 모티프가 된 정서영의 조각 모르는 귀의 부제는 ‘I don’t know about the ear‘이다. “나는 귀에 대해 몰라요로 해석이 되는 만큼, 실제 우리의 감각은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을 지각하기 일쑤이다. 눈은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보고, 귀는 지금까지 학습된 대로 듣는다. 예컨대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각 나라마다 표현이 제각각인 것을 보아도 우리의 감각은 불확실하다. 그러니 이 시처럼 우리는 귀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며 감각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화자는 미술관 벽에 전시된 귀를 조각한 작품을 감상하다가 마음을 빼앗긴다. 시에서의 는 소리를 듣는 신체의 기관이자 들은 말씀을 전달하는 음성 상징이기도 해서 중의적으로 읽힌다. 화자에게 우주 한 분의 현시이기도 한 는 우주적으로 전언을 타전해 올 것 같다. 사물의 본질이자 세계의 본질인 마음의 바탕에 근접할 수 있는 만남 곧 내 귀청이 트이는감각의 전율을 기대하는 화자의 희원은 생과 운명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다. “, 무서워요 <모르는 귀>, 잔뜩 지워진 내가 들려요”는 우주적인 전언을 고대한 끝에  나오는 소리이다. 이때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겠다. “그간의 내 시편 몇 행()"에 대한 가치 판단의 유보로써의 의미와 기존의 음을 지우고 생의 감각을 전율케 할 새로운 음에 대한 모색이 와 닿는다. (박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