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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맛과 멋

제목 심정(心旌 ) - 최영규
작성일자 2019-06-24
조회수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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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心旌 )*


최영규



피가 섞인 콧물이 흐른다

침을 삼키려면 터져버릴 것 같은 목울대,

온몸을 웅크린 오소리 꼴이 되어서는 주위를 살핀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핏덩이가 섞인 가래를 한 움큼씩 뱉어낸다

허기로 숨 쉴 기력조차 없지만

막상 밥알은 단 한 톨도 목구멍 속으로 삼킬 수 없다

누가 내 머릿속에서 맷돌질을 하는가

틈 없이 덤벼드는 두통

, 모든 게 자근자근 나를 무두질해대며

하산! 그만 하산하라고,

후들거리는 허벅지로 겨우 버티고 서있는 나를 밀어

바람 앞에 세운다

 

오후 4, 한낮도 훨씬 지났는데 햇살은 여전하다

저 기세라면 어제 내린 폭설도 농담처럼 가볍게 녹이고,

바람은 다시 구름을 불러모아

하늘을 잘게 부숴놓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반복되는 폭설 그리고 오한

오늘이 며칠이더라,

환각처럼 보이는 저 멀리, 빙하 아래쪽으로

소용돌이치며 흩어지는 내가 보인다.

                                                      

* 마음의 깃발.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산란한 상태를 이르는 말.




▶산행에서 복잡한 내면탐구가 그려지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깃발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핏덩이가 섞인 가래를 한 움큼씩 뱉어내면서 왜 산으로 가는 것일까

위 시가 실린 시집 <크레바스>는 여러 산행일지로 읽힌다.

안데스처럼 8000미터 고산을 오르는 것은 일상의 눈으로 보면 사서 고생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하산이라는 단어가 지배한다.

그러나 산행은 양방향의 욕망이어서 세속으로 돌아오면 다시 산이 그리워질 것이다.

여기서 산은 인생의 은유이고, 윤회하듯 하산과 등산을 반복하느라 마음은 전쟁이다.

이번만 오르고 말겠다는 다짐도 했을지 모른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의 환각과 빙하 아래쪽으로 소용돌이치며 흩어지는 내가 보인다는 죽음의 임사 장면이다.

산행을 통해 사는 게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있다. (박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