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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곳에 살면서도 - 김상미
작성일자 2019-07-11
조회수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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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살면서도



김상미



 이곳에 살면서도 내가 읽는 것들은 길 잃은 세대의 발자국들, 길은 한없이 멀고, 나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커피에 타마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너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내 취미는 고작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 누워 오래전 헤어진 얼굴들처럼 흩날리는 꽃 비를 맞는 것, 그래도 오가는 사람들 곁에 착 달라붙어 아양 떠는 애완견들은 보기만 해도 지루하고, 양가죽을 뒤집어쓴 늑대들은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파, 나는 읽고 또 읽었던 연애소설을 다시 읽는 노인처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애인들의 나라를 그리워하며, 수풀떠들썩팔랑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팔랑팔랑 이곳을 떠나고 싶어, 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 기차역을 서성이고 공항을 서성인다, 미래는 어디에 숨어 버렸나, 어제 본 뉴스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친다, 그러나 내 피난처는 고작 내 몸뚱이뿐, 이곳에 살면서도 아직도 누군가가 보내온, 벚나무에 꽃들이 활짝 피었다는 엽서 한 장이 가장 기쁘고, 내 삶은 다른 곳에, 더 멀리에 있을 거라는 갈망에 목이 타들어 간다, 어떤 것에도 무엇에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구름, 멋진 구름에만 매달렸던 보들레르처럼.

                            

   

  

 화자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저곳을 꿈꾸고 있다. “이 도시를 떠나고 싶어 기차역을 서성이고 공항을 서성이는 이유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애인들의 나라를 그리워하는 탓이다. “어제 본 뉴스가 오늘도 계속되어 지루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도 무엇에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구름, 멋진 구름에만 매달렸던 보들레르처럼살고 싶어서이다.

 

 누구나 더러 꿈꾸었을 것이다.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구름처럼 자유롭고 싶은 마음. 일탈, 방황, 파격, 위반은 얼마나 낭만적이며 아름답고 아픈 단어인지. 법 제도의 규율과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두려우면서 설렘을 동반한다. 시를 읽다보니 힘들게 나를 붙들고 있던 억압들이 영혼의 진정한 거처가 어디냐고 묻는 듯하다.

 

 이때 이곳과 저곳의 경계는 어떤 시적 기능을 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마음의 길을 낸 방랑자의 발화를 살펴보면 오가는 사람들 곁에 착 달라붙어 아양 떠는 애완견들은 보기만 해도 지루해서 경계한다. “양가죽을 뒤집어쓴 늑대들은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파서 또 경계한다. 생활 속에 덧씌워진 체면과 가면이 꽤나 무겁겠다 싶고 세상에 숨겨진 비의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확장된다. 정신적 내면풍경인 현실부정의 본능이 그리움과 경계라는  양면으로 그려져 있다. 신비한 것에 대한 시인의 관심이 생의 본질과 세상의 저편에 대해 탐색하고 있다. (박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