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

이명수

서울역 앞 흡연 구역 사람들 틈에 끼어

담배를 빤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다

철쭉꽃이 한창이다

한쪽에선 악기 연주가 한창이다

멀리 남미 에콰도르에서 왔다는 인디오

담배 입에 물고 모두가 박수다

기다리는 순간은 잠깐이다

하나 되는 순간도 잠깐이다

시간을 본다

바삐 입구로 들어서는 사람들

담배 한 대의 시간만큼

연주 한 곡의 시간만큼

멈추어 있다 떠난다

살아 있는 것들은 그렇게 오래 떠난다

  ▶서울역 흡연구역에서 화자는 자신이 탈 기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이국적인 인디오의 연주를 듣는다. 이렇게 잠시 하나가 되었다가 사람들은 다시 흩어져 각자의 방향으로 떠난다. 이 시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나타난 시인의 의식은 상투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현장과 장면을 포착해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아이러니하면서 빛난다. “살아 있는 것들은 그렇게 오래 떠난다”는 화자의 목소리는 삶의 많은 신비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모두 이 지상에 잠깐 함께 머물다가, 죽는 날까지 “오래 떠나는”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떠남은 순간이고 오래 머물지 못하므로 이 구절은 모순 형용이다. 그러나 담배 한 대 같이 피고 노래 한 곡 같이 듣는 시간의 소중한 의미를 헤아려 보거나, 만남이란 떠도는 것들 사이에 지속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단순히 순간의 일이 아니라 길고도 의미심장한 시간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이런 “오랜 떠남”을 통해 다른 존재들과 교류하게 된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에콰도르의 떠돌이 예술가를 만나는 것도 바로 그런 계기들을 통해서일 것이다. 존재는 존재 자체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만남과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 시는 간결하고 정결한 시어로 독자들을 설득력 있게 이끌고 있다. 익숙한 광경을 쉬운 언어로 그리되, 진부적이지 않게 보여주는 시인의 시각이 보인다. (박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