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을 곁들여 회원들의 시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회원마당 > 시의 맛과 멋

시의 맛과 멋

제목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작성일자 2018-10-01
조회수 886
첨부파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니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우리가 미친 듯이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의 희망으로 공중에서 머뭇거렸으나 진정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절망은 희망에서 비롯된다. 희망이 있었기에 절망하는 것이다.

시인은 희망의 내용이 질투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질투뿐이었다고.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그러나 질투가 곧 희망이다. 욕망이다.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포함한 모든 삶 사랑하는 것. 곧 희망이다.

질투가 나의 힘인 것이다.

  

-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