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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맛과 멋

제목 문장들 - 정호
작성일자 2019-03-25
조회수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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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

 

정호

 

 

생은 지우개도 없는 문장이다 누가 대신 필사해 줄 수도 도돌이표도 없는 불립문자다 뜻대로 써지지도 않으며 각각의 호흡에 따라 단문으로 짧게 끊거나 길게 이어지기도 하는 만연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문엔 표절금지도 없지만 복사본 하나 나온 적 없는 생기체(生記体)

 

이순 넘어 되돌아보는 내 문장. 되짚을수록 부끄러운데 누구에게 일독을 권하랴 그래도 마지막 구절 하나는 깔끔하게 마무리 하겠다고 한두 구절 끄적거리며 오늘의 여백을 메꾸고 있는

 

이 흐릿한 글씨체를 온몸으로 밀고 간다




시 쓰기 자체를 성찰하며 메타적인 지향을 보이는 시이다. 시인은 생은 지우개도 없는 문장이라고 상징적으로 정의하고, “불립문자”, “만연체등에 비유하다가 생기체(生記体)”라는 멋진 조어를 만들어 냈다. 시인의 시 쓰기를 되짚을수록 부끄럽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마지막 구절 하나는 깔끔하게 마무리 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기도 한다. “흐릿한 글씨체를 온몸으로 밀고가는 수고가 느껴진다. 바로 이 점이 시인 자신의 존재 방식이자 시인이 살아온 희로애락이 쌓인 연륜이겠다.

신비평가 브룩스(C. Brooks)가 비유한 '잘 빚어진 항아리'를 닮은 형상의 시는 지난한 사유와 작업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다. 흙의 정성과 노력을 통해서 항아리가 곱게 빚어지듯 언어의 조탁과 정신적 결과물로써의 이 시를 감상해 본다. 시의 생성과 소통 혹은 여백의 과정을 수행하는 시인의 자의식이 돌올하다. “누가 대신 필사해줄 수도없는 생. 감성과 이성의 조화로운 균형으로 통합하며 온몸으로쓰는 부분에서 치열함이 전해온다. (박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