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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맛과 멋

제목 탁발 - 김신영
작성일자 2020-02-10
조회수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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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



김신영



다복이 피는 꽃은 복이 있나니 구들장보다 환하나니

오만 세상에 빛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도 책갈피 끼워

빼곡히 밑줄을 긋던 사람

 

푸른 이파리 아래 나에게 밑줄 치던 사랑이나니

악수를 할 때마다 따뜻한 정이 오가던 사람입니다

그대는 오늘 거칠고

부드러운 손마디를 가졌습니다

 

철마다 피는 꽃은 빛이 있나니 그늘보다 아름답나니

버덩한 세상에 복 받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은 선한 뜻 이어

가만히 행동하는 인고의 풀빛

 

우리는 오늘을 편물 누더기에 탁발하는 고행자일까요

대사를 까먹은 배우처럼 당신 집 앞에 오래 서 있었을까요

흡반이 있는 여덟 개의

다리를 가졌을까요

 

멍텅구리였을까요 망할 놈의 상판이었을까요

그리 휘젓는 더듬이 끝에 둥그런 눈알을 가졌을까요

안개가 흐르는 세상을

거친 이빨로 무너뜨렸을까요

 

지금은 모오든 복 받은 것에 꽃밥을 흩뿌리면서

여덟 개의 눈으로 가만히 흰 깃을 닦아 주던

하루를 탁발하던 마음씨

환히 비추어 봅니다

- 김신영,탁발,시인수첩, 2019년 겨울호.



  인격이 존중되면 세상이 조화롭다. “푸른 이파리 아래 나에게 밑줄 치던 사랑은 설렌다. 4연과 5연에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의문문들로 성찰이 깊어진다. “우리는 오늘을 편물 누더기에 탁발하는 고행자일까요대사를 까먹은 배우처럼 당신 집 앞에 오래 서 있는 광경은 먹먹하다. “흡반이 있는 여덟 개의/ 다리에서 연체동물처럼 바닥을 흐물거리며 탁발을 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지금도 남방불교에서는 부처님 당시의 근본 생활규칙을 따르며 걸식을 한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탁발은 의아할 수 있다. 탁발은 라는 상()이 있으면 행하기 힘들다. 자존심, 자아의식 이런 상이 동원되면 구걸을 할 수 없다. 부처님이 걸식한 것은 아상(我相)’을 비운 것이며 상징적 의미로 해석된다. 모든 존재는 그 어떤 것도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고 텅 비었다는 무상의 이치다.

 남에게 뭔가를 구걸하는 것은 처절하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자기를 비워야 이루어진다. 내 것을 뺏긴다고 생각하면 나누어 줄 수 없고,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낮추며 받는다. (박수빈)